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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 조회수 : 1576

봄과 여름 사이의 빛 (대학생 안혜원)



봄과 여름 사이의 빛 (대학생 안혜원)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풍경에 녹아 마스크를 끼고 아침을 나선다. 마스크가 구겨지지는 않았는지 거울에 비추어본다. 아홉 시에 시작하는 봉사를 신청하는 것은 무리였나, 스스로 중얼거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얼굴에 물씬 풍겨야 하는 선선한 아침의 냄새는 하얀 마스크에 가리어져 있다.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평일과 다르게 한가하다. 천천히 걷는 사람들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온기를 느낀다. 조용한 버스에 너울거리는 먼지와 인사를 나누는듯한 햇살이 반갑다. 5월의 햇살은 잡힐 듯 보이는데, 호흡을 방해하는 마스크는 여전하다.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친구들과 나누었던 말이 이제는 말버릇처럼 느껴질 때쯤, 봉사를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이 소중했음을 느낄 때, 나는 가장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시작한 것이다.

 

주말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봉사를 신청한 이유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이유, 봉사도 없으면 정말 나갈 일이 없었다. 작년에는 학교에서 과제를 마무리하고 제출하는 것의 굴레 속에 살았다. 이번 학기는 전혀 달랐다. 저번 학기의 내가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 꿈만 같이 느껴지던 학기였다. 수업을 인터넷 강의가 대체하고 집에서 과제를 하면서 규칙적으로 생활을 정돈하기 힘들었다. 그때 ‘서울 동행’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는 봉사로 채워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은 작위성의 연속이었다. 학생들에게 봉사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학교와 이를 꾸역꾸역 완성해 가는 학생들은 마치 대치하는 두 무리를 보는 듯했다. 과연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진심으로 봉사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는 학생 중 하나는 나였다. 막상 본인은 착실하게 봉사를 하고 감상문을 짜내던 학생이었다. 봉사를 위한 학교의 자율수업 시간에 의문이 비치지 않는 ‘완벽한’ 감상문을 완성하고 가만히 앉아 있던 공기 같던 존재는 무색무취의 공기 같은 대학생이 되었다. 취향이 모호해 결정하기를 어려워하고 남들이 예뻐 보인다는 것을 예쁘다고 하는 그런 학생이 되었다.

 

그러한 나라서, 봉사를 신청한 것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그것도 소중한 주말의 잠을 포기한 나의 선택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말에 할 일이 없어서 봉사한다는 스스로의 선택은 다시 돌아보았을 때, 자신을 스스로 납득시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미 결정한 것을 이제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버스에 몸을 실어 가는 길에, 취소를 할 수 있는지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았던 것은 나만의 비밀이다.

버스에 내려, 봉사를 신청한 학교까지 잠깐 걸었다. 짧은 걸음 뒤에 학교에 도착했다. 봉사하기 위해 도착한 학교는 졸업했던 초등학교와 많이 닮아있었다. 알록달록 벽화 색과 밝은 색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을 지나면서 골대가 참 작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몇 시 인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긴장된 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잠깐 걸었던 걸음 때문인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까지 느껴지는 두근거림을 잠깐 느끼고 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봉사를 담당하는 부서를 가기 위해 교무실을 들렀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을 때는 교무실이 정말 부담스러웠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긴장한 내가 무색하게도 밝게 웃으시면 ‘일찍 오셨네요.’라고 말씀해주셨다. 내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목에 건다. 반듯하게 이름표를 매만진다. 담당하는 반에 들어와 체온계로 내 온도를 확인하고 알코올 손 세정제로 손을 닦아낸다. 코가 아릿한 세정제가 마스크 사이로 들어온다. 손 세정제가 다 흡수될 동안 손을 매만지며 교실을 둘러본다. 그 교실의 풍경은 기존의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과는 달랐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조그마한 1, 2학년 학생들이 체구보다 몇 배는 큰 모니터를 바라보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과목은 시간마다 달랐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학생들의 진도를 뒤에서 점검하는 역할을 시키셨다. 모니터에 집중하는 동글한 뒤통수들이 교실 뒤로 들어온 나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각기 다른 자세와 높이의 동그란 뒤통수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해주셨다. 와르르! 아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모니터에 두던 시선이 일제히 움직인다. 갑자기 푸르른 그 눈길들이 본인을 바라보니 잠시 민망해 손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이러한 집중의 눈길도 잠시, 내가 있어야 할 수업 교실의 뒤쪽으로 이동하자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교실의 학생들은 뒤에 살짝 들어온 새로운 존재에 잠깐 관심을 주고는 자신들의 모니터에 다시 집중했다. 학생들은 딸깍 소리의 마우스와 함께 모니터 속의 내용과 소통했다.

 

나의 5월의 교실의 생각할 때, 학생들이 다들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무엇이었다. 따스한 햇볕의 기운이 퍼져가는 계절의 시작에서 5월의 학교는 소풍의 계절이었다. 새로운 학기의 모니터 수업을 받아들인 아이들의 어깨에 빛나는 햇살의 눈길이 야속했다. 눈으로 교실을 쓸어 담으며 학생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질문을 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덮는 큰 마스크 아래 달싹이는 입이 그려지듯 했다. 반짝하고 빛나는 학생들의 눈빛은 5월의 계절과 닮았다. 봄과 여름의 사이, 그 푸르름이 담겨있었다. 아침에 나오기를 귀찮아하던 나의 모습을 스스로 잊은 듯,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학생들의 손이 올라가면 학생들의 자리로 가서 질문을 해결했다. 모니터를 통한 수업이 어색한 것은 모니터를 앞두고 앉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었다. 수업시간 동안 그 과목에 맞는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아이들의 동그란 뒷모습이 눈에 많이 닿았다.

 

봉사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나서는 길에 학생들을 급식실로 안내했다. 반짝이는 눈빛의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많이 했다. 서로 한 줄을 만들어 안내하는 길에 밝은 푸르름을 나누어 받았다. 봉사를 하러 갔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나누어 받아서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텅 빈 교실을 바라보다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학교를 나서는 발길이 귀에 걸린 마스크를 잊은 듯 가볍다.




※ 2020년 <코로나19 시대, 우리는 이렇게 '동행'했다!> 서울동행 활동후기 공모전 수상작(최우수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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