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동행소식

동행스케치

2021-12-24 | 조회수 : 1863

꽉 찬 여름 (구한결 선생님)




꽉 찬 여름 (구한결 선생님)


작품 설명 : 개인적으로 고시 공부를 시작하려던 여름이었다. 환경에 대한 고민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먼저였다. 자칫 텅 빌 뻔했던 2021 여름을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마음으로도 꽉 채워 준 서울동행 지금지구챌린지 기획봉사의 과정을 챌린지 기획자이면서 참여자였던 필자의 변화를 중심으로 담았다. 

■ 제  목 : 꽉 찬 여름

■ 내  용

여름이었다.
생명력 넘치는 계절임에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폭염이라는데 마스크까지 끼고 놀러 나갈 일이 없었고, 휴학 후 고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할일은 산더미인데 언제 다하지, 제대로 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녹음이 짙은 바깥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8년지기 고등학교 친구의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서울동행에서 진행하는 환경 관련 기획봉사를 같이 해보자는 거였다. 가뜩이나 할일도 많은데 봉사, 그것도 기획봉사……. 처음에는 어떻게 에둘러 거절할지 고민했다. 
“나, 너도 알다시피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나려나 모르겠다.” 말끝은 저절로 흐려졌다. 친구는 같이 할 고등학교 친구들이 이미 모였으며 인원 제한도 없으니 내 사정이 정 그렇다면 알겠다고, 그래도 조금 더 생각해 달라며 꼭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지루해 지려던 여름을, 친구들과 화면으로나마 자주 얼굴보며 지구 좋은 일도 하며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지금지구챌린지에 합류했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 환경에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지구에 대한 부채감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걱정 정도는 있었지만 여느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인다든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든지 하는 실천 방법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종이컵 하나로 설마’, ‘어떻게 고기를 포기해.’와 같은 생각이 실천 의지를 지우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지구챌린지 기획 회의를 하면서도 의구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 탄소 중립 챌린지를 기획하고 있는 나도 별 생각 없는데,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까? 상품으로 받을 비건빵을 기다리다가 챌린지가 끝나고, 비건빵을 먹어치움과 동시에 탄소 중립도 새하얗게 잊어버리지 않을까? 아니, 상품을 받을 만큼 참여해 준다면 다행이지 한 달동안이나 환경을 위한 실천을 신경쓸까? 솔직히 귀찮을텐데.
바로 이런 생각들이 ‘불소빙고 챌린지’의 바탕이 되었다. 환경을 위한 실천은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하루에 하나쯤은 해낼 수 있을 만큼 사소하지만, 그 조그만 행동이 불러 일으킬 효과를 생각해 보면 가히 나비효과라고 부를 만하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작고 어설프게 느껴질지라도 한명한명의 실천과 인식이 소중하게 모여 지구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불소’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실천을 함께하자는 의미로 지은 챌린지 이름이었다. 탄소 중립을 돕는 스물 한 개의 실천과 세 개의 자율적 실천,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으로 이루어진 스물 다섯 개의 빙고 칸을 하루하루 채워 나가며 불완전한 환경운동가가 되는 것이다. 불소빙고는 나는 환경운동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완전히 야채만 먹지는 않아도, 요일별 채식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큰 도움이 된다. 당근마켓 중고거래의 소소한 즐거움은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가득 찬 메일함에서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탄소 배출이 감축된다. 마트에 가기 전 주머니에 장바구니를 챙겨 넣으면 환경은 물론 봉투값도 아낄 수 있다. 한 번 해보면 정말 별 거 아닌 일들이, 정말정말 사소한 조금의 수고와 관심이, 모이고 모여 계속되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몇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꾸준히 빙고 칸을 지워갔고, 실천을 인증하며 참여자들은 느낀 점을 덧붙이곤 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참여자들과 카카오톡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만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인증샷과 함께 느낀 점을 덧붙였다. 사소하고 별 거 아니지만, 완벽히 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했네요, 이렇게 간단하고도 뿌듯한 일이었네요, 이런 점은 처음 알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 마트가는 길을, 가족과 나눠 먹은 두부 유부초밥을, 한 시간동안 불을 꺼 놓은 방 천장을, 텀블러에 담아 온 카페 음료를, 잔반 없는 접시를, 깨끗이 비운 메일함을, 환경을 다룬 소설책을 보았고, 응원했고, 공유했다.
대규모로 거창하게 환경을 사랑합시다 와아아, 같은 느낌의 캠페인은 아니었고, 인터넷상으로만 진행되는 환경 챌린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참여자의 수가 폭발적인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빙고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나조차도 매일 참여하지 못했다. 이렇게 진행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불완전함으로 서서히 채워지고 있는 빙고판들을 보며 나는 서울동행 지금지구챌린지와 함께하는 2021년의 여름이, 그리고 내 마음이 함께 채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참여자들이 행하는 실천과 생각이 모이고 모이면 정말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같은 사람 한 명한명이 모여 불소빙고 참여자들이 된 것처럼, 이 몇십 명이 모이면 또 몇백 명이 되고, 그 몇백 명이 모이면 또 더 커질 것이다. 설령 그 과정이 느리고 불완전하더라도, 함께 하고 있을 인스타그램 너머의, 또 어딘가의 참여자들과 함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설명할 수 없는 몽글거림이 마음 속에 피어오른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이제는 가을도 막바지라 쌀쌀해 졌다. 불소빙고는 끝났지만 보일러 온도를 신경쓰고, 고기는 주말에만 먹으려고 노력하고, 카페에 갈 때는 텀블러를 꼭 챙긴다. 두 달 남짓의 시간들이 나에게 남아 있듯 빙고에 함께 했던 참여자들에게도 남아 있지 않을까. 불소빙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안부를 물어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파일명 '서울동행 30일 프로젝트 2차 지원서_불완전소중걸스-제출'을 꺼내 보았다. 친구들과 이 기획안을 작성하던 의심많은 나를 생각해 본다. 지루하고 덥고 불안한 여름을 혼자 보낼 뻔했던 나를 생각해 본다. 서울동행과 불소빙고 챌린지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던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번 여름은 어땠나.
꽉 찬 여름이었다.

※ 2021년 <'잊고'살기보다 '잇고'살았던 동행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동행 활동후기 공모전 수상작 입니다.
댓글 댓글
댓글 내용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