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수업은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지. 수업 초반에는 낯을 가리느라 내 질문에 묵묵부답인 너를 보면서 앞으로의 봉사 활동이 막막하게 느껴진 적도 많았단다. 특히 우현이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가르쳐보는 초등학생이라 더욱 어려웠어. 초등학생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등 모든 게 난관의 연속이었지. 수업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낯을 가리는 너를 보면서 선생님은 너에게 질문하기 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기로 다짐했어. 내 이야기를 듣다보면 언젠가 너도 너의 이야기를 해줄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거든. 선생님이 자주 가는 학교 도서관부터, 대학교 행사, 연예인 본 이야기, 선생님 졸업 사진까지 지금 돌이켜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구나. 아무튼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마음을 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 수업 시간마다 틈만 나면 내 이야기를 했어. 아직도 기억나. 평소와 다름없이 막간을 이용해 내 일상을 너에게 말한 뒤, 습관처럼 ‘우현이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어봤을 때, 너가 “학교에서 운동회 했어요!”라고 말하던 그 순간이. 그 날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운동회가 재밌었는지 되물었어.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너가 나한테 마음을 열었단 생각이 너무 기쁜 나머지 너에게 질문을 왕창 했던 것 같네. “운동회 했어?”, “아직도 청팀이랑 백팀 나누나?”, “우현이는 어느 팀이었는데?”, “이겼어? 졌어?” 등 온갖 질문을 했는데 너는 더이상 망설이는 기색 없이 신나하며 대답해줬지.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너는 수업 시간에 너의 의견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했어. 단순히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말고도, 수입이 어렵지는 않은지, 수업 시간에 참고용으로 보여주는 영상 자료가 재밌는지, 지루한지 등.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너 덕분에 선생님은 매 시간 수업하는 게 더 즐거워졌어. 새로운 수업 자료를 준비하면서 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는 게 재밌었고, 어려워하던 내용이 더 이상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는 너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보람찼어. 물론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도 다음 주에 함께 할 수업이 너무 기다려진단다. 너와 운동회 이야기를 하던 그 순간. 그 잠깐의 순간을 선생님은 아직도 잊지 못해. 지금에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너에게 내 이야기만 한가득 늘어놓을 때는 걱정이 정말 많았거든. 혹시나 네가 내 이야기를 듣기 싫은데 억지로 듣는 건 아닌지, 이러다 마지막 수업 날까지 나만 이야기하는 건 아닌지, 내 접근방식이 옳은 것인지 등 고민도 걱정도 너무 많았어. 그래서 네가 마음을 연 그 순간을 더더욱 못 잊겠어. 그리고 그 날이 너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계기가 되었길 바라. 물론 선생님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 신중한 너의 모습도 많이 아낀단다. 하지만 너와 마찬가지로 낯을 많이 가렸던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을 낯가리는 데 보냈던 게 후회될 때가 종종 있었거든. 선생님은 너와 수업을 하면서 상대가 낯을 가리더라도 내가 끈기 있게 기다리면 언젠간 마음을 열어준다는 걸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 나와의 수업이 너에게도 단순히 수학을 배우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조금 일찍 여는 것의 즐거움도 배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남은 기간동안 더 즐겁게 수업하면서 많은 추억 쌓자.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 2022년 서울동행 공모전 오주연님의 [우수상]작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