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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 조회수 : 331

서로의 햇빛이 되어(김하연 선생님)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4e40024.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49pixel, 세로 144pixel
 
 
어느덧 쌀쌀해진 날씨를 느끼며 ‘2022년도 벌써 지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스레 한 해를 되돌아보고 싶어져 일 년 동안의 기억을 훑었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기억들 속에서 유독 서울동행 봉사활동을 했던 기억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활동 당시에는 소소했던 일들이 왜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라도 옅어질 기억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아놓고 싶어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청량했던 6,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동생들과의 첫 만남이라 긴장된 마음으로 센터에 들어가니 아직 동생들이 학교에서 오기 전이었다. 안내를 받고 잠시 앉아서 기다리는데 창가에 있는 봉선화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분 속 봉선화들은 키는 제법 자랐지만 아직 얇아서 해가 비추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렇게 구경하며 낯선 공간에 슬슬 적응할 때쯤 문밖으로 왁자지껄하며 동생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동생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었고 동생들은 누구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그게 우리들의 첫만남이었다.
 
 
 
첫 만남은 비록 어색했지만, 시간이 흘러 동생들과 어느 정도 라포가 형성되었고 그때 있었던 소소한 추억들을 나누고 싶다.
 
 
 
그 첫 번째 추억은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에피소드이다.
 
 
여느 때와 같이 센터에서 안나라는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나가 대화를 하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금까지 오셨던 선생님들 중에서 제일 좋아요!’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안나는 키움센터에 다니는 동생들 중에서도 고학년에 속하는 동생이었다.
그만큼 스쳐 지나가는 봉사활동자들을 많이 봤을테다. 그런 안나에게 들은 말이었기에 더욱 뜻깊어 정말?’이라고 물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던게 기억난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느라 상대적으로 안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안나의 한마디는 나에게 잊지 못할 뿌듯함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준 것만 같다.

 
두 번째 추억은 선생님, 괜찮아요!’ 에피소드이다.
 
 
봉사활동 일과 중 동생들을 도서관까지 인솔하여 독서를 하고 오는 활동이 있었다. 성인 발걸음으로는 1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이지만 동생들과 함께 한여름에 손을 잡고 도서관까지 갔다 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전을 위해 손을 꼭 잡고 이동을 해야 했지만 따뜻한 체질을 가진 나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동생들 손을 잡는 것이 미안했다.
하루는 나의 손을 잡아야 하는 민재에게 민재야, 선생님 손이 너무 뜨거워서 그러는데 너무 힘들면 손목을 대신 잡아도 돼라고 말하자 민재는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해주었다. 민재의 말 덕분에 마음 편히 손을 잡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민재는 분명 더웠을 것이다. 몇 번이나 손에 난 땀을 바지에 닦고 다시 내 손을 잡아준 것을 보면 말이다. 삶을 살아갈수록 힘들고 불편한 건 피하거나 거부하게 되는 나의 모습과 마주한다.가끔은 불편한 상황을 참는것이 바보같은 짓이라고 함부로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런 나에게 민재는 나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의 불편을 감수하고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 동생이다.
 
 
마지막 추억은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에피소드이다.
 
 
앞서 얘기한 민재는 방과후학교에서 마술을 배워 나에게 보여주곤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기꺼이 민재의 조수가 되어 민재의 마술공연을 도왔고 매주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보여주는 마술이 특별한 즐거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이었다. 동생들에게는 굳이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여느 때와 같이 활동을 했다. 그날도 역시 민재와 마술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괜히 그동안 민재가 보여줬던 마술들을 나열하며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저기 멀리서 가만히 듣던 태훈이가 갑자기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에요?’라고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봉사활동 마지막 날이란걸 아이들이 알게 되어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태훈이가 대화를 듣고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이처럼 동생들은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초등학생을 돌본다고 하였을 땐 애들이 뭐 얼마나 알겠어?’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동생들과 함께하며 고정관념은 깨지고 어린 친구들을 존중 받아야 할 인격체로서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봉사활동 마지막 날, 첫날 보았던 봉선화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3개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 해를 향해 기울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생들이 겹쳐 보였다. 지금의 동생들은 아직 여린 줄기를 가진 봉선화 같다. 해 대신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 것이다. 3개월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가 동생들에게 뿌려진 좋은 햇빛이었길 바란다. 동생들 또한 나의 줄기를 키우는데 좋은 햇빛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날의 봉선화처럼 나도, 동생들도 꼿꼿하게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 2022년 서울동행 공모전 김하연님의 [우수상]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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