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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 조회수 : 336

봉사는 소소함에서 출발한다(최강 선생님)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d840004.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195pixel, 세로 246pixel
 
 
대학교 1학년. 교육봉사 과목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고등학교 때처럼 헌혈 몇 번하고 센터 몇 번 가면 되는건가? 하고는 무심결에 흘려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교육봉사 동아리도 하고 연계된 센터도 다니고 할 때, 그 시간에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알바를 더 하겠다는 생각 속 1학년을 보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가 되고 나서야 교육봉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았다. 곧 군대도 가야하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교육봉사 동아리는 이미 마감. 허둥지둥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선배가 말해줬다.
 
 
교육봉사 하려면 일단 서울동행부터 들어가봐.”
 
 
처음에 듣고는 의아했다. 두볼이나 1365밖에 모르던 나는, 처음 듣는 사이트 이름이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믿을 만한 선배였기에 반 정도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울동행에 가입했다.
 
사실 처음에는 서울동행이 부담스러웠다. 참여자 교육 이수도 해야 한다니. 센터 청소와 헌혈 정도로 봉사 시간을 채워온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학생들 찾아가서 숙제 몇 번 도와주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는 마음으로 참여자 교육 이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교육을 들을수록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교육봉사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교육봉사를 단순 시간 채운다는 생각으로 한편으로는 내심 귀찮은 마음을 가슴 속에 품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반면 동시에 내세울 것 없는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 또한 마음에 피어났다. 자극적이고 물질적인 요즘, 알바와 학업에 깔려 지내온 나의 영혼은 죽어있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얼마를 버는지가 중요해져 버렸다. 마음이 고장난 기분이었다. 그런 내게 서울동행은 무너지면 안되는 가치를 알려주는 기관이었다. 비록 부끄러운 모습을 가진 나이지만,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봉사기관을 배정받았다. 성암국제무역고등학교. 네 명 학생의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과외는 몇 번 해봤지만 동시에 여러 명을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에게는 피아제와 비고츠키가 있다. 교직에서 배운 이론들로 무장한 채 자신감을 가지고 교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나는 세 가지의 난관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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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서 신청했던 고등학교. 학교에 여고라는 글자가 없으니 여고가 아닐 거라는 내 편협한 생각으로 인해 문을 열었을 때 내 앞엔 네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이전 과외도 남학생만을 가르쳤다. 축구 이야기와 게임 이야기라면 금방 친구가 되었던 그들과는 달리 여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가 첫 난관이었다. 대학교 수업에서 어색한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 친구들에게 똑같이 자기소개를 하자고 하는 내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친구들은 여학생이면서 동시에 내가 겪었던 시기를 똑같이 겪고 있는 동생들이었다. 꿈이 무엇인지, 고민이 무엇인지, 뭐를 좋아하는지. 혹여나 부담을 느낄 것 같아 내 이야기를 먼저 하며 다가가니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물론 동행에서 제공해주는 간식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27f8001b.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54pixel, 세로 365pixel
 

대학교에서 교육 수업을 들을 때는 학생을 고려한 여러 수업을 고민한다. 항상 학습자를 생각하며 학생의 특성을 배우고 여러 교직 이론을 공부했다. 나는 동생들뿐 아니라 나 역시 배워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며 내 수업에서 고쳤으면 하는 점을 포스트잇에 적어달라 했다. 밤새워 피피티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여러 영상자료를 준비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곧 학생이 없는 수업은 공허한 수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교육봉사에서 만난 동생들은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학생과는 차이가 컸다.
 
 
이 친구들은 학생이면서 동시에 동생들이고 각자마다 개성을 가진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수업에서는 마치 추상적인 학생이라는 무언가를 상정한 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학생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대화를 통해 본인들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발전하고 성장해갔다. 피아제와 비고츠키께는 죄송하지만, 실제 봉사하는 과정에서 당신들의 이론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공감하며 들어줘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더욱 도움이 되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6e80081.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48pixel, 세로 281pixel
 
 
과외를 할 적에는 내가 맡은 학생에게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면 그만이지만, 단체 교수 과정에서 네 학생은 모두 다른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능숙한 학생을 위주로 가르치자니 다른 학생이 따라오지 못했고, 미숙한 학생을 위주로 가르치자니 능숙한 학생이 지루해했다. 학생 수준 간 양극화가 커서 중간 수준의 수업을 하기에도 곤란했다. 세 번째 난관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지금 선택한 방법은 따로 수업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미숙한 학생에게 오늘 내용을 미리 보고 있으라고 한 후에 능숙한 학생을 한 시간 수업한다. 이후 능숙한 학생에게 과제를 제시한 후 미숙한 학생을 한 시간 수업한다. 수업 마무리에서 능숙한 학생의 과제를 점검하고 미숙한 학생과는 복습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각자 미리 책을 보는 과정이나 숙제하는 과정이 지루하기도 하고 딴짓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수준별 수업 지도를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세 가지 난관을 겪으며 봉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봉사라는 단어는 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양의 연탄을 옮겨야 할 것 같고, 많은 돈을 기부해야 할 것 같으며 먼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아이들을 도와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치 엄청난 도덕적 단계에 이른 사람만이 가능한 느낌이다. 불우이웃을 돕자는 말에,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구를 돕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교육봉사를 하며 통해 깨닫는 가장 큰 점은 실제 봉사란 우리가 생각하는 봉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봉사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봉사는 높은 도덕 단계에 이른 사람이 불쌍한 사람을 찾아가 베푸는 동정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같이 성장하는 배움을 얻어가는 시간이자 공간이 봉사이다. 못나고 부끄러운 나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봉사는 소소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이것이 서울동행이 알려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선배가 됐을 때 허둥지둥하는 후배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교육봉사 하려면 일단 서울동행부터 들어가봐



* 2022년 서울동행 공모전 최강님의 [최우수상]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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