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31 | 조회수 : 3807
[대학생 칼럼] 서울동행 3년, 앞으로의 30년
서울동행 3년, 앞으로의 30년
처음 대학생이 되어 마주한 삶은 생각보다 공허했다. 그동안 학교와 입시라는 틀에 갇혀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생각했는데, 막상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결국 그 안에서 난 ‘이건 못하겠지.’라고 되뇌며 또 다른 선을 긋고 있었다. 급작스레 주어진 선택과 책임의 무게에 알게 모르게 위축되었던 것 같다. 변화는 낯설었고, 온종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동행을 만나게 된 계기도 거창하지 않았다. 다시 중고등학교 생활을 엿보고 싶어, 그리고 앞으로 대학생이 될 친구들이 새롭게 만나게 될 사회를 미리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에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으론 대학생이 되어 ‘붕 떠버린 듯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절박감도 있었다.
그러나 호수에 무심코 던진 작은 돌멩이는, 다시 커다란 물결이 되어 돌아왔다. 처음 시작한 멘토링 마지막 날, 한 학생이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그동안 본인이 어려워했던 문제풀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한 수업이 끝날 때마다 했던 생각들이 노트 한 귀퉁이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노트를 펼쳐본 순간은 이제까지 살면서 받아온 가장 큰 선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수업 때까지도 ‘이 학생은 이럴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동생들을 대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면서,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 오히려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보내준 순수한 시선과 믿음은, 내가 평생을 거쳐 다시 사회에 보답해야 할 든든한 지원과 격려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참여하던 서울동행 봉사는 어느새 더 넓은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작년 IAVE(세계자원봉사대회) 포럼에서, 각국의 청년 봉사자들이 ‘봉사’라는 키워드 하나를 가지고 한데 모여 이야기하는 현장에 직접 참가할 수 있었다. 오로지 타인을 위해 본인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활동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건 새로운 충격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봉사야말로 더 나은 세상을 일구어나갈 가장 빠른 시작이자, 무엇보다 큰 행동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또한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서울동행 봉사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뿌듯하다.
어느새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또 다른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곧 대학교 캠퍼스를 학생 신분으로 거닐 수 없다는 사실에, 나의 ‘동행’도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단 사실에 미련이 남는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건 괴롭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시작이 아닌 끝이었다. 한 학기동안 정든 동생들에게 어떻게 작별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마지막 날엔 늘 잠을 설쳤다. 해외연수 팀원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고역이었다. 어느새 서울동행이 주는 삶의 의미와 추억들은 ‘나’라는 존재와 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늘 한 학기, 혹은 그보다도 더 짧은 만남의 끝은 아쉽고 씁쓸했다.
그러나 봉사가 가진 또 하나의 가장 큰 매력은 ‘언제나 다시’일 것이다.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져 있다. 동행을 통해 스스로가 언제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저 ‘봉사’라는 작은 실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배웠다. 너무나 작아 보이던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까지 만난 동생들, 대학생 봉사자들과 함께 백지인 나의 세상에 다채로운 의미를 그려나갈 수 있었다. 매 학기 새로운 경험을 하고, 본인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볼 수 있다는 것. 수많은 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또 앞으로 만날 많은 봉사자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언제나 든든하다. 서로를 지탱해주고 넘어질 때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이들은, 언제나 혼자만의 가벼움에서 벗어나 함께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으로서 내가 서울동행과 보낸 3년 동안의 시간은, 앞으로의 30년, 또 그 이후의 시간을 채우는데 있어 중요한 나침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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